한 기술자의 경우
조직 안에 남겨진 아웃사이더에 대하여
그는 자신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적어도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성실한 사람에 가깝다. 맡은 일을 잘하고 싶어 하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를 바라며, 자신이 만드는 시스템이 단지 계약의 산출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업무를 실제로 지탱하는 질서가 되기를 바란다. 그에게 일은 생계의 수단이지만, 생계만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세계와 연결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 점에서 그는 평범한 직장인의 불평과는 다른 곳에 서 있다.
그의 고통은 야근이 많아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상사가 무능해서만도 아니고, 동료가 부족해서만도 아니며, 회사의 제도가 불합리해서만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고통의 표면일 뿐이다. 더 깊은 곳에는 훨씬 더 오래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세계가 내세우는 언어와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 사이의 불일치를 본다. 회사는 IT 전문회사라고 말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것이 때때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조직이라기보다 인력을 투입하고 계약을 완수하는 조직으로 보인다. 조직은 고객가치를 말하지만, 실제 회의의 중심에는 납기, 보고, 검수, 관계, 책임 회피가 있다. 사람들은 기술을 말하지만, 기술은 축적되지 않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흩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모순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그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여기서 아웃사이더가 시작된다.
아웃사이더는 반드시 사회의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종종 사회의 한복판에 있다. 회사에 출근하고,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서를 쓰고, 일정표를 검토하고, 산출물을 만든다. 겉으로 보면 그는 내부자다. 조직도 안에 이름이 있고, 직무가 있으며, 평가를 받고,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그 세계의 안쪽에 완전히 거주하지 못한다. 그는 그 세계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언어를 믿지 못하고, 그 세계의 규칙을 따르면서도 그 규칙이 충분히 정당한지 계속 묻는다.
이것이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는 회사가 요구하는 방식으로만 살 수 없다. 그러나 회사를 벗어날 수도 없다. 그는 조직 안에서 기능하지만, 조직의 정신 안에는 완전히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내부자의 위치에 배치된 외부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내부자의 월급을 받고 외부자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그의 이력은 이 상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그는 어릴 때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소프트웨어는 그에게 뒤늦게 습득한 직무 기술이 아니라 오래된 언어였다. 세계를 논리적으로 나누고, 관계를 설정하고, 책임을 배분하고, 혼란 속에 구조를 세우는 방식이었다. 이어 그는 공군 장교로, 전산장교로 7년을 보냈다. 그곳에서 시스템은 단순한 비즈니스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직의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었고, 공공성을 떠받치는 장치였으며, 신뢰와 질서의 문제였다. 기술은 취향이나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였다.
이 두 경험은 그의 안에 하나의 도덕적 직관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는 대충 만들어서는 안 된다.
조직은 자기 역할의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는 자신이 다루는 것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이 직관은 매우 조용하지만 완고하다. 그는 이것을 이념처럼 외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는 실무의 언어로 말하려 한다. Java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객체지향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문제를 표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외 처리, API 응답 구조, 트랜잭션 경계, 로깅, 테스트, 운영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실패를 프로젝트마다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솔루션화하고 프레임워크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들은 조직 안에서 종종 너무 무겁게 들린다.
어렵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못 하겠다.
일정이 없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안 되는가.
그는 이 반응 앞에서 당혹스러워한다. IT 전문회사에서 Java를 못 하겠다는 말이 가능한가.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에서 객체지향 설계를 못 하겠다는 말이 가능한가. 물론 모든 사람이 뛰어난 설계자가 될 수는 없다. 모든 개발자가 프레임워크를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전문조직이라면 자신이 반복해서 수행하는 일에 대한 기본 역량과 공동의 기준은 가져야 하지 않는가.
그의 질문은 기술 질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존재론적 질문에 가깝다.
이 조직은 자신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이 일은 자신이 무엇을 책임지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웃사이더의 고통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사소한 사건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동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단지 일정이 촉박한 프로젝트이고, 귀찮은 표준화 논의이며, 너무 원칙적인 동료의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일의 의미가 무너지는 장면이다. 조직이 자기 이름을 잃어버리는 장면이다. 전문성이 단순한 역할명으로 축소되는 장면이다.
그가 참기 어려워하는 것은 무능 그 자체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할 수 있다. 배우지 못했을 수 있고, 경험이 없을 수 있으며, 두려워할 수 있다. 그가 진정으로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부족함을 부족함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다. 전문회사를 자처하면서 전문성의 결핍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고객가치를 말하면서 고객에게 남겨질 시스템의 품질에는 둔감한 태도다. 기술을 말하면서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다.
이때 그는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의 뿌리에는 애정이 있다.
무관심한 사람은 분노하지 않는다. 이미 냉소에 도달한 사람은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괴롭다. 아직 좋은 일을 하고 싶기 때문에 화가 난다. 아직 조직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적어도 자신이 맡은 일만큼은 더 나은 질서 속에 놓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계속 말하고, 설명하고, 구조화하려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그의 장점은 약점이 된다.
그에게 주어진 긍정적 피드백은 전문성, 방향 제시, 자발성, 의욕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문제를 본다. 방향을 제시한다. 시키지 않아도 움직인다. 일이 단순히 주어진 만큼만 처리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에게 주어진 부정적 피드백은 커뮤니케이션, 갈등조정, 회복탄력성이다. 이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그가 보는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스럽고, 그가 제시하는 방향은 누군가에게는 위협적이며, 그의 자발성은 조직의 무기력과 충돌한다. 그는 단지 의견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자신의 무능이나 안이함이 드러난다고 느낄 수 있다. 그는 구조를 말하지만, 상대는 책임이 늘어난다고 느낀다. 그는 원칙을 말하지만, 조직은 갈등을 본다.
아웃사이더는 자주 이 오해 속에 갇힌다.
그는 자신이 진실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직은 그를 불편한 사람으로 경험한다. 그는 본질을 말하려 하지만, 조직은 그것을 공격으로 듣는다. 그는 더 나은 질서를 만들고 싶지만,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평가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 결과 그는 점점 더 고립된다. 맞는 말을 했는데도 관계가 나빠지고, 필요한 말을 했는데도 피곤한 사람이 되며, 조직을 위해 말했는데도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여기서 그의 고통은 자기분열의 형태를 띤다.
한쪽의 그는 말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IT 전문회사라면 최소한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고객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은 축적되어야 한다. 개발자는 개발자다워야 한다.
다른 한쪽의 그는 말한다. 여기는 네 회사가 아니다. 네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 조직은 네가 생각하는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너는 권한 없는 영역까지 책임지고 있다. 계속 이렇게 살면 너 자신이 먼저 소진될 것이다.
이 두 목소리는 모두 옳다.
그래서 더 고통스럽다.
그가 단순한 이상주의자라면 현실을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을 본다. 회사의 사업모델을 알고, 계열사 일감의 구조를 알고, SI 조직의 인력 투입 논리를 알고, 일정과 검수와 책임 회피가 어떻게 의사결정을 지배하는지 안다. 반대로 그가 단순한 현실주의자라면 적당히 타협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타협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그의 안에는 여전히 더 높은 기준이 있다.
콜린 윌슨이 주목한 아웃사이더의 비극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세계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가 본 더 높은 삶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현실로 만들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는 일상의 얕음을 견디지 못하지만, 깊이를 제도화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더 선명한 세계를 본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다시 회의실과 보고서와 일정표와 조직의 관성 속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철학자의 서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현대의 사무실에서도, 프로젝트룸에서도, 협업 도구의 댓글창에서도, 형식적인 회의록 속에서도 일어난다. 아웃사이더는 오늘날 검은 코트를 입고 거리를 헤매는 문학적 인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때로 아키텍처 문서를 쓰는 사람이고, 결함 원인을 분석하는 사람이고, 표준을 만들자고 말하는 사람이고, 아무도 읽지 않는 리스크 문서를 남기는 사람이다. 그는 조직 안에서 가장 실무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품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왜 이렇게 만들고 있는가.
이 일은 누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나는 왜 이것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가.
그는 한때 팀장이 되면, 혹은 본부장이 되면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틀리지 않다. 권한은 실제로 중요하다. 사람을 배치하고, 평가 기준을 바꾸고, 기술 표준을 세우고, 교육을 만들고, 조직 구조를 조정할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작은 팀 하나는 충분히 다른 질서로 운영될 수 있다. 한 본부의 문화도 일정 부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알게 된다. 직책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조직은 한 사람의 선의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사업모델, 평가체계, 수익구조, 고객과의 관계, 경영진의 후원, 구성원의 역량과 욕망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팀장이 되면 팀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본부장이 되면 본부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회사 전체의 존재 방식을 바꾸는 일은 훨씬 더 깊은 싸움이다.
그는 여기서 또 하나의 유혹을 만난다.
창업.
자기 자신의 조직을 만드는 것. 자신이 믿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장을 직접 설계하는 것. 기술을 자산으로 보고, 고객가치를 중심에 두며, 개발자를 단순 인력이 아니라 전문직으로 대우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 이것은 그에게 단순한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실존적 해결책처럼 보인다. 남의 세계 안에서 계속 번역하고 조율하고 타협하는 대신,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 길로 나설 수 없다.
이 역시 그를 아프게 한다. 자유를 보지만, 자유로 곧장 걸어갈 수 없다. 가능성을 느끼지만, 현실의 조건이 그를 붙잡는다. 생계, 가족, 자본, 실패의 위험,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시장. 그는 단순히 용기가 없어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책임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뛰쳐나갈 수 없다. 바로 그 책임감이 그를 회사에 남게 하고, 동시에 그를 회사 안에서 고통스럽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극적인 결단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의식을 회수하는 일이다.
그는 서서히 배운다. 회사가 자신의 소명을 온전히 담아 주지 못한다면, 소명을 회사에 전부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조직이 기술 자산을 축적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그것을 개인의 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을. 회사가 자신이 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문제를 더 맑은 언어로, 더 낮은 진입장벽으로,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이것은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아웃사이더가 냉소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세계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본 사람은 두 가지 길 앞에 선다. 하나는 세계 전체를 증오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본 결핍을 하나의 형식으로 만드는 길이다. 글로, 코드로, 교육으로, 방법론으로, 작은 도구로, 더 나은 팀의 운영 원칙으로, 언젠가의 회사로.
그가 회사 밖에서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부업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식이 살아남을 장소다.
반복되는 SI 프로젝트의 실패를 분석하는 글. Java와 Spring 기반 업무 시스템을 위한 표준 경로. 객체지향 설계를 현장의 언어로 낮춘 설명. 후배 개발자가 따라 할 수 있는 샘플 코드. 프로젝트 리스크를 진단하는 체크리스트. 고객가치와 기술부채와 운영 책임을 연결하는 프레임. 이런 것들은 회사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의 세계 안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것들은 그가 본 것을 잃지 않기 위한 표식이다.
그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주인의식 전체가 아니다.
그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권한 없는 주인의식이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주인의식 자체는 아름다울 수 있다. 어떤 일을 자기 일처럼 아끼는 마음, 결과의 품질을 자신의 양심과 연결하는 태도, 조직과 고객을 남처럼 여기지 않는 성실함은 귀하다. 그러나 그것이 권한 없는 영역까지 확장될 때, 그것은 자기학대가 된다. 회사는 그의 것이 아니다. 사업모델도 그의 것이 아니고, 임원의 철학도 그의 것이 아니며, 조직 전체의 기술 수준도 그의 단독 책임이 아니다.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내가 작성한 코드는 나의 책임이다.
내가 승인한 설계는 나의 책임이다.
내가 후배에게 전한 기준은 나의 책임이다.
내가 침묵함으로써 동의한 결정은 나의 책임이다.
그러나 회사의 모든 결핍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
이 문장은 차갑게 들릴 수 있으나, 사실은 그를 살리는 문장이다. 책임의 경계가 없으면 소명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인간은 무한한 책임을 감당할 수 없다. 특히 더 많이 보는 사람, 더 깊이 느끼는 사람, 더 높은 기준을 가진 사람일수록 경계가 필요하다. 경계는 도피가 아니라 보존의 조건이다.
그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내부자가 되는 일이 아니다.
그는 아마 완전한 내부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조직이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끝까지 현실로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관행이라는 말 앞에서 언제나 조금 멈칫할 것이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에서 어떤 공허를 느낄 것이다. 그것이 그의 약점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의 재능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균열을 본다. 다만 이제는 그 균열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의 몸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아웃사이더의 성숙은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와 자기 사이에 정확한 거리를 세우는 것이다.
너무 멀어지면 냉소가 되고, 너무 가까워지면 소진된다. 그는 이제 그 중간의 어려운 자리를 찾아야 한다. 회사 안에서는 전문직으로서 맡은 범위를 정직하게 수행한다. 리스크를 본다면 기록하고 말한다. 가능한 개선은 작게 구현한다. 그러나 조직이 반복해서 거부하는 것을 자신의 존재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회사 밖에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것을 조용히 축적한다.
이것은 매우 현대적인 아웃사이더의 훈련이다.
고독하지만 유용한 훈련이다.
그는 더 이상 회사를 구원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일을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사랑을 더 오래 지속하기 위해 사랑의 대상을 분리하는 것이다. 회사라는 특정 조직이 아니라,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 특정 프로젝트가 아니라, 더 나은 기술 질서를 세우는 일. 특정 구성원을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형식을 남기는 일.
이것이 그의 소명의 새로운 형태가 될 수 있다.
소명은 반드시 현재의 조직 안에서 완성될 필요가 없다. 어떤 소명은 조직과 충돌하면서 더 선명해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없는 세계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세계를 알게 된다. 그에게 현재의 회사는 그런 장소일 수 있다. 머물러야 할 고향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장면. 자기 안의 기준이 무엇인지 확인하게 해 주는 거울. 자신이 언젠가 만들고 싶은 질서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례.
그는 아직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반드시 패배한 것은 아니다.
떠나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자기 안의 불빛을 완전히 넘겨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아직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아직 부끄럽지 않은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 한다. 아직 기술이 축적되고, 사람이 성장하고, 고객에게 실제 가치가 전달되는 세계를 상상한다. 이것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단순한 체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웃사이더는 고통받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직 고통받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세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며, 바로 그 때문에 더 높은 가능성을 향해 밀려나는 사람이다. 그의 고통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그의 불편함은 그가 아직 기준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만 그 고통이 그를 태워 없애지 않도록, 그는 이제 자기 불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불은 집을 태울 수도 있고, 길을 밝힐 수도 있다.
그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회사를 불태우는 것도, 자기 자신을 태워 없애는 것도 아니다. 그 불로 작은 등불을 만드는 일이다. 글 하나, 코드 하나, 표준 하나, 후배에게 건넨 문장 하나, 언젠가의 조직을 위한 원칙 하나.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형식으로 바꾸는 일.
그는 회사 안의 아웃사이더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최종 이름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는 아직 자기 세계를 만들기 전의 사람이다. 아직 자신의 장을 갖지 못했지만, 이미 그 장의 필요를 누구보다 분명히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의 고통은 끝이 아니라 준비일 수 있다. 다만 그 준비가 그를 파괴하지 않도록, 그는 오늘도 조용히 하나의 선을 긋는다.
회사는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 전문성은 내 것이다.
프로젝트는 내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남기는 기준은 내 것이다.
조직은 내 뜻대로 바뀌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는 아직 내 문제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아웃사이더의 삶은 다시 시작된다.